무너진 울타리 📖 1화 깨진 거울
📖 1화: 깨진 거울
창고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창문을 통해 바람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곳의 분위기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야,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
실장 이모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의 앞에는 박스를 정리하던 직원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모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들고 있던 손소독제 상자를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
📦—!
상자는 쿵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르다 멈췄다.
옆에 있던 직원들이 움찔하며 서로를 힐끔거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외면했다.
"진짜 답답하네. 하기 싫으면 그냥 때려치워!"
그 순간, 침묵을 가르고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실장님, 왜 그러십니까?"
이강현. 기관에서 가장 오래 일한 팀장이자, 이곳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모지는 그를 노려보았다. 입꼬리가 비뚤어지게 올라가며 조소를 지었다.
"뭐? 네가 뭔데 나한테 따져?"
"저희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복지 대상자들을 돕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려고 있는 게 아닙니다."
강현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들에 땀이 배었다.
이모지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뭐? 네가 날 가르치려고?"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됐어. 네가 그렇게 정의로운 척할 거면, 네가 직접 해보던가. 아, 근데 그럴 깜냥은 되나?"
이모지는 비웃으며 강현을 밀치듯 지나쳤다.
강현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바닥에 나뒹구는 손소독제 상자를 조용히 주워 들었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임버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넘어가요. 아무리 말해도 안 바뀌어요."
강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기관의 현실
강현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장 박미선이 무심한 얼굴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팀장님, 또 실장이랑 부딪쳤어요?"
강현은 잠시 말을 삼켰다.
이제는 박미선의 반응이 익숙했다.
늘 이렇게 적당히 웃으며, 적당히 무마하려 들었다.
"소장님, 이런 식으로 계속 운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강현 씨, 알겠는데요. 어차피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다구요?"
강현은 황당한 듯 소장을 바라보았다.
"복지 대상자들은 방치되고 있고, 직원들은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 말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주제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손상된 님 말입니다. 지난번에 도시락 배달 건으로 '횡령' 누명을 썼던 거, 아시죠?"
박미선은 그제야 관심이 생긴 듯 고개를 들었다.
"아, 그거? 뭐, 경찰에 신고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본인은 그걸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요."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 기관에서 정말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있긴 한 걸까?
고립되는 강현
강현은 사무실을 나와 팀원 최어리의 자리로 향했다.
한때 믿을 수 있는 동료였지만, 요즘 들어 점점 변하고 있었다.
"최 팀장, 오늘 본 거 다 알죠?"
최어리는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뭐, 봤지. 근데 강현 씨,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마."
"이게 크게 만들 문제가 아니잖아."
"나도 알지만, 그냥 좀 넘어가자. 어차피 실장님한테 찍히면 힘들어지는 건 우리야."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그때, 강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손상된.
'설마…'
강현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팀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손상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강현은 한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결심했다.
"네, 어디 계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집어 들었다.
이 기관이 아무리 썩어가도,
누군가는 손을 뻗어야 했다.
🔥 (다음 화: 손상된의 진실)